항목 ID | GC08800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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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育 |
영어공식명칭 | Educatio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필준 |
[정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조선 후기에서 현대까지의 교육 연혁.
[조선 시대의 교육]
조선 시대 대표적인 교육기관은 향교와 서원이었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방에 설치된 관학 교육기관이었으며,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도 보령향교·남포향교·오천향교 등이 확인되므로, 조선 시대 관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원으로는 화암서원·신안서원 등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는데, 보령 지역 양반층의 엘리트 교육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서당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서당은 사립 초등교육기관으로 볼 수 있는데, 청소년들이 한문을 배우고 기초 교양을 쌓던 곳이었다. 서당은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설립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을당 하나꼴로 운영되었다. 서당은 근대 교육기관이 설립되기 시작하는 시점에도 다수 존재하여 근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을 교육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서당은 조선 시대는 물론 일제 강점기에서 1970년대까지도 심심치 않게 확인된다. 보령 지역 또한 서당이 다수 존재하였다.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 운영되었던 서당으로는 화산동의 화현정사, 내항동의 녹문서당, 현포동 흑포서당, 흥덕동 명암서당, 죽정동 중보서당, 동대동 느랏서당, 죽정동 지장굴서당 등이 확인된다. 읍면 지역의 경우 1989년 조사에 따르면, 주포면에 7개, 오천면에 5개, 천북면에 8개, 청소면에 8개, 청라면에 9개, 남포면에 5개, 웅천면에 13개, 주산면에 21개, 미산면에 7개 등 보령 지역에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 운영이 확인되는 서당은 90여 개에 달하였다.
[근대의 교육]
한국 근대 교육은 개항 이후 시작되었다. 원산학사·육영공원 등이 설립되어 영어·수학·지리 등을 가르쳤다. 배재학당·이화학당·정신학교 등 선교사에 의한 근대식 학교도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근대식 학교를 통해 영어·천문·지리·수학 등의 근대 학문이 보급되었다.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도 대한제국기 근대식 학교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09년 9월 남포공립보통학교 설립 인가가 되었고, 1911년 8월 조선총독부가 조선교육령을 공포함에 따라 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보령 지역의 공립보통학교는 1909년 남포공립보통학교[지금의 웅천초등학교], 1911년 보령공립보통학교, 1913년 오천공립보통학교, 1918년 대천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면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4년제로 개교했다가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에 따라 6년으로 개정되었다. 공립보통학교는 1920년에도 지속적으로 보급되었는데, 1921년 주산공립보통학교[지금의 주산초등학교], 1923년 청라공립보통학교[지금의 청라초등학교], 1924년 남포공립보통학교[지금의 남포초등학교], 1928년 미산공립보통학교 등이 세워지고, 1932년 천북공립보통학교[지금의 천북초등학교], 1936년 청진공립보통학교[지금의 청소초등학교], 1937년 광명공립보통학교 등이 세워지는 등 12개의 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이후 1938년 조선교육령 개정에 따라 공립보통학교가 공립심상소학교로 개칭되었으며, 1941년에는 다시 공립국민학교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때에도 학교는 지속적으로 설립되어 1940년 청룡공립심상소학교[지금의 청룡초등학교], 1941년 옥계공립초등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에서 8.15광복 때까지 보령 지역에 14개의 공립 초등교육기관이 설립되어 보령의 주민들을 교육하였다. 한편, 일본인들의 소학교도 존재했는데, 1911년 주포공립심상소학교, 1913년 대천공립심상소학교 등으로, 일제 강점기에 운영되다가 8.15광복 직후 폐교되었다.
보령에는 공립 교육기관 외에도 사립 교육기관도 존재하였다. 개항기에 남포의 옥산학당, 주포의 보령학당, 주산의 옥성학당 등이 설립되어 신식 교육을 보급하였고, 1910년대 사립 남포학교, 사립 보령학교, 사립 옥성학교로 변경되어 운영되었다. 1920년대에도 사립 용수유신학원·사숙용광학당·사립용강학원 등이 설립되어 일제 강점기에 운영되기도 하였다.
1930년대부터는 보령 지역에 중등교육기관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33년 설립된 주산공립농업실수학교, 1942년 설립된 주산공립여자농업전수학교, 1944년 설립된 대천공립농업전수학교 등이 그것이다. 이들 실업계 중등교육기관은 조선총독부의 농업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전문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였다. 이 학교들이 모체가 되어 8.15광복 이후 보령 지역의 여러 중등교육기관으로 운영되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이루어지고 미군정이 설립되자, 초등교육기관의 이름을 국민학교로 바꾸고 운영을 계속하였다. 이 시기 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의 현행과 같은 학교 제도가 자리 잡았다.
[현대의 교육]
학교 제도는 이후 정부가 수립되어, 1950년 「교육법」이 제정되면서 법제화되었다. 이때의 교육법에 따라 교육 자치제가 실시되어 충청남도 교육위원회가 설치되고, 보령군 교육구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5.16군사쿠데타에 의해 교육 자치제가 폐지되어 보령군 교육구도 없어졌다가 1964년 교육 자치제가 부활하여 보령군 교육청이 설치되었다. 이후 대천시교육청이 대천과 보령의 교육을 관할하다가 지금은 충청남도보령교육지원청이 보령의 교육을 관할하고 있다. 2022년 기준 보령에는 33개 유치원에 920명의 원생이 등록되어 있으며, 초등학교는 29개교에서 4,302명의 학생이, 중학교는 12개교에서 2,282명의 학생이, 고등학교는 6개교에서 1,853명의 학생이, 특수학교 1개교에서 82명 등 총 81개 학교에서 9,439명의 학생이 교육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