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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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亭遺稿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사현 |
간행 시기/일시 | 17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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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시문집 |
저자 | 이지함 |
편자 | 이정익 |
간행자 | 이정억 |
권책 | 2권 1책 |
행자 | 10행 24자 |
규격 | 32.1㎝[세로]|22.0㎝[가로] |
어미 |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
판심제 | 토정집(土亭集) |
조선 전기 학자 이지함의 시문집.
『토정유고(土亭遺稿)』는 1672년(현종 13) 홍문관 응교 이선(李選)[1632~1692]의 『토정유고』와 가장(家狀) 초고본을 교정, 증보해서 1720년(숙종 46) 현손 이정억(李禎億)이 경상북도 경주에서 간행한 이지함(李之菡)[1517~1578]의 시문집이다.
이지함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伯)·형중(馨仲), 호는 수산(水山)·토정(土亭)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6대손으로, 아버지는 현령 이치(李穉)[1477~1507]이다.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이지번(李之蕃)[1508~1575]에게 글을 배우고, 서경덕(徐敬德)[1489~154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수리·의학·복서·천문·지리·음양·술서 등에 통달하였고, 『토정비결(土亭秘訣)』, 『농아집(聾啞集)』 등을 저술하였다.
1672년(현종 13) 홍문관 응교 이선이 이지함의 유고 한 질을 묶어 『토정유고(土亭遺稿)』라 이름 붙이고 교서관(校書館)에 두었다. 이 유고를 바탕으로 이지함의 현손 이정익(李禎翊)[1655~1726]이 가장 초고본을 교정, 증보한 뒤 외현손 조세환(趙世煥)과 함께 간행하기로 하였다. 이후 1720년(숙종 46) 이정익이 경주부윤으로 지내던 중 경주에서 간행하였다.
『토정유고』는 2권 1책의 목판본(木板本)으로, 광곽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며, 반곽의 크기는 세로 21.8㎝, 가로 16.4㎝이다. 행자 수는 10행 24자,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며, 책 크기는 세로 32.1㎝, 가로 22.0㎝이다.
『토정유고』 권 1에는 권수 부분에 정호(鄭澔)[1648~1736)의 서문이 있으며, 「차송운장운(次宋雲長韻)」·「차도정절귀거래사(次陶靖節歸去來辭)」·「대인설(大人說)」·「이포천시상소(莅抱川時上疏)」와 같은 시(詩)·사(辭)·설(說)·소(疏)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 2에는 부록으로 이지함의 행적을 기록한 유사(遺事)와 제문(祭文)·묘갈명(墓碣銘)·시장(諡狀)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송시열(宋時烈)의 발문과, 1712년(숙종 38) 권상하(權尙夏)의 발문이 있다.
『토정유고』는 토정 이지함의 시문집으로, 『토정비결』과 『농아집』에 담기지 않은 이지함의 학문 세계와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